다양성을 인정하는 우리사회, 이제는 향 다양성도 존중해야
황숙영
(사)환경정의 국장
오늘도 숨 막히는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사무실로 향한다.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긴 머리칼이 내 얼굴을 때린다. 내 몸이 움찔한 건 얼굴로 들이닥친 머리칼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리적인 어택과 동시에 화학적인 어택이 있었다. 그건 바로 향이었다. 며칠 전에는 지인 병문안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코를 막고 말았다. 예의를 차릴 사이도 없이. 다행히 향수를 뿌린 사람 뒤에 서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향 때문에 곤란을 겪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단체 활동을 시작했을 즈음에는 특별히 선호하는 향수가 있었다. 지금은 그 향수를 사용하지 않고 향으로 제품을 고르지 않게 된지 꽤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뿌린 향수를 맡거나 섬유유연제 향이 강하게 나면 나도 모르게 숨 쉬기가 어렵다. 심지어 불쾌하기까지 하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그 향을 강제로 맡아야 하니 말이다.
단체에서 화학물질 중심의 유해성 문제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화학물질의 용도나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안전관리 제도나 화학제품을 대하는 시민의 태도 등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유해물질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몇 가지 자료를 접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향을 넣는 가장 큰 이유가 ‘마스킹(Masking)’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스킹은 화학물질 고유의 냄새를 다른 향이 나는 물질로 덮는다는 의미다. 가령 방향제의 경우 불쾌한 냄새를 없애주는 것이 아닌 다른 향으로 그 냄새를 덮어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결국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은 채, 속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화학물질에는 득이 있으면 반드시 실이 함께 존재한다. 가령 코로나19가 온 지구에 큰 재앙을 불러일으켰을 때, 우리사회도 어느 곳에서든 방역에 힘을 쓰고 매일 소독한다는 문구가 하나의 ‘잘 관리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소독제는 생물을 죽이는 물질로 많은 양을 사용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위험하다. 그래서 2년 전에 화학물질의 양면성을 설명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생활화학제품의 ‘그린워싱’에 대해 다루었는데, 그 중 하나의 주제가 ‘향’이었다. 시민들의 인식을 제대로 알기 위해 향을 선호하는 집단과 비선호 집단을 나누어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진행했다.
향을 선호하는 집단에서는 브랜딩 한 향으로 본인을 표현한다는 답변이 주를 이루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본인이 사용하는 향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낄까’에 대한 질문에 ‘당연히 좋아할 것이다’라는 답변이었다. 반면, 향을 선호하지 않는 집단은 민감성 때문에 향을 맡았을 때, 실제 알레르기 반응 같은 건강 문제와 향료가 지닌 유해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제품에서 향료 성분을 일일이 확인하고 어떻게든 향을 피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공간이었다. 타인과 함께 하는 공간은 피할 길이 없어서 사람이 많은 공간 진입을 꺼려했다.
향 선호와 상관없이 향료의 유해성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환경보건 전문가들은 향료 노출 시 접촉성 피부염과 같은 피부 질환, 호흡기 질환, 신경학적 손상이나 암 유발 등의 건강상의 이상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향료의 한 성분 함량이 일정한 법적 기준을 넘어서면 단순히 ‘향료‘로 표시하지 못하고 그 성분 명칭을 제품 라벨 내용에 표시해야 한다. 예를 들면 리모넨, 리날룰, 시트로넬올 등 알레르기유발가능물질 26종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기분 전환에 도움을 주고, 친환경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라벤더 오일에도 알레르기유발물질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에서는 알레르기유발가능물질 관리 품목 56종을 더 늘렸는데, 라벤더도 그 중 하나다.
또 다른 문제는 향료를 녹이거나 향의 지속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일명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는 프탈레이트계 물질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당장 나에게 알레르기나 환경호르몬 등의 문제가 없으니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화학물질은 노출량, 노출 방식, 노출시간에 따라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언젠가 건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일어날 건강 문제 때문에 지금 나를 표현하는 방식, 심리적 안정을 주는 기능을 하는 향 사용을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향을 선택할 때는 나에게 어떤 득이 있고 어떤 실이 있는지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향은 냄새의 일종으로 밖으로 발산하게 되어 있다. 발산되는 향으로 인해 누군가 건강상 어려움을 겪거나 심리적인 불편감이 느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올해 상반기에 환경정의에서 향 관련한 사용실태와 인식 조사(n=1008, 2024.4.23. ~ 5.12. 실시)에서 ‘만약 본인이 사용하는 향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존재할 경우 향을 계속 사용하겠냐’는 질문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56.1%(n=565), 사용 양을 줄인다는 응답이 34.4%(n=347)였다.
누군가는 향이 좋아 향수를 브랜딩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바디 미스트, 필로우 미스트, 향수 등 동시에 다양한 향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향 때문에 괴로울 수 있다. 우리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건강 영향과 심리적 불편감으로 괴로워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누군가를 배려하여 향 사용 여부나 양을 선택했으면 한다. 나는 오늘도 향을 힘들어하는 나의 상황과 취향이 존중받는, 향 다양성이 있는 사회를 바라본다.
향 제품·공간 사용 실태와 인식조사 결과(2024년)
9월의 칼럼니스트 (사)환경정의 황숙영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하는 시민, 생활화학제품 만드는 기업, 환경부 공무원 등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유해물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화학물질로부터 우리사회의 안전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지에 고민하면서 활동합니다. 하지만 잡다하고 재미난 일에 몰두할 때가 많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우리사회, 이제는 향 다양성도 존중해야
황숙영
(사)환경정의 국장
오늘도 숨 막히는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사무실로 향한다.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긴 머리칼이 내 얼굴을 때린다. 내 몸이 움찔한 건 얼굴로 들이닥친 머리칼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리적인 어택과 동시에 화학적인 어택이 있었다. 그건 바로 향이었다. 며칠 전에는 지인 병문안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코를 막고 말았다. 예의를 차릴 사이도 없이. 다행히 향수를 뿌린 사람 뒤에 서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향 때문에 곤란을 겪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단체 활동을 시작했을 즈음에는 특별히 선호하는 향수가 있었다. 지금은 그 향수를 사용하지 않고 향으로 제품을 고르지 않게 된지 꽤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뿌린 향수를 맡거나 섬유유연제 향이 강하게 나면 나도 모르게 숨 쉬기가 어렵다. 심지어 불쾌하기까지 하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그 향을 강제로 맡아야 하니 말이다.
단체에서 화학물질 중심의 유해성 문제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화학물질의 용도나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안전관리 제도나 화학제품을 대하는 시민의 태도 등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유해물질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몇 가지 자료를 접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향을 넣는 가장 큰 이유가 ‘마스킹(Masking)’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스킹은 화학물질 고유의 냄새를 다른 향이 나는 물질로 덮는다는 의미다. 가령 방향제의 경우 불쾌한 냄새를 없애주는 것이 아닌 다른 향으로 그 냄새를 덮어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결국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은 채, 속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화학물질에는 득이 있으면 반드시 실이 함께 존재한다. 가령 코로나19가 온 지구에 큰 재앙을 불러일으켰을 때, 우리사회도 어느 곳에서든 방역에 힘을 쓰고 매일 소독한다는 문구가 하나의 ‘잘 관리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소독제는 생물을 죽이는 물질로 많은 양을 사용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위험하다. 그래서 2년 전에 화학물질의 양면성을 설명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생활화학제품의 ‘그린워싱’에 대해 다루었는데, 그 중 하나의 주제가 ‘향’이었다. 시민들의 인식을 제대로 알기 위해 향을 선호하는 집단과 비선호 집단을 나누어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진행했다.
향을 선호하는 집단에서는 브랜딩 한 향으로 본인을 표현한다는 답변이 주를 이루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본인이 사용하는 향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낄까’에 대한 질문에 ‘당연히 좋아할 것이다’라는 답변이었다. 반면, 향을 선호하지 않는 집단은 민감성 때문에 향을 맡았을 때, 실제 알레르기 반응 같은 건강 문제와 향료가 지닌 유해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제품에서 향료 성분을 일일이 확인하고 어떻게든 향을 피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공간이었다. 타인과 함께 하는 공간은 피할 길이 없어서 사람이 많은 공간 진입을 꺼려했다.
향 선호와 상관없이 향료의 유해성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환경보건 전문가들은 향료 노출 시 접촉성 피부염과 같은 피부 질환, 호흡기 질환, 신경학적 손상이나 암 유발 등의 건강상의 이상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향료의 한 성분 함량이 일정한 법적 기준을 넘어서면 단순히 ‘향료‘로 표시하지 못하고 그 성분 명칭을 제품 라벨 내용에 표시해야 한다. 예를 들면 리모넨, 리날룰, 시트로넬올 등 알레르기유발가능물질 26종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기분 전환에 도움을 주고, 친환경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라벤더 오일에도 알레르기유발물질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에서는 알레르기유발가능물질 관리 품목 56종을 더 늘렸는데, 라벤더도 그 중 하나다.
또 다른 문제는 향료를 녹이거나 향의 지속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일명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는 프탈레이트계 물질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당장 나에게 알레르기나 환경호르몬 등의 문제가 없으니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화학물질은 노출량, 노출 방식, 노출시간에 따라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언젠가 건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일어날 건강 문제 때문에 지금 나를 표현하는 방식, 심리적 안정을 주는 기능을 하는 향 사용을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향을 선택할 때는 나에게 어떤 득이 있고 어떤 실이 있는지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향은 냄새의 일종으로 밖으로 발산하게 되어 있다. 발산되는 향으로 인해 누군가 건강상 어려움을 겪거나 심리적인 불편감이 느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올해 상반기에 환경정의에서 향 관련한 사용실태와 인식 조사(n=1008, 2024.4.23. ~ 5.12. 실시)에서 ‘만약 본인이 사용하는 향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존재할 경우 향을 계속 사용하겠냐’는 질문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56.1%(n=565), 사용 양을 줄인다는 응답이 34.4%(n=347)였다.
누군가는 향이 좋아 향수를 브랜딩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바디 미스트, 필로우 미스트, 향수 등 동시에 다양한 향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향 때문에 괴로울 수 있다. 우리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건강 영향과 심리적 불편감으로 괴로워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누군가를 배려하여 향 사용 여부나 양을 선택했으면 한다. 나는 오늘도 향을 힘들어하는 나의 상황과 취향이 존중받는, 향 다양성이 있는 사회를 바라본다.
향 제품·공간 사용 실태와 인식조사 결과(2024년)
9월의 칼럼니스트 (사)환경정의 황숙영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하는 시민, 생활화학제품 만드는 기업, 환경부 공무원 등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유해물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화학물질로부터 우리사회의 안전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지에 고민하면서 활동합니다. 하지만 잡다하고 재미난 일에 몰두할 때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