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럼

더 안전한 생활을 위한 실천과 일상의 작은 변화, 제품안전협약을 향한 응원, 앞으로의 기대와 제안 등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2024 제품안전연구소 "기고·칼럼"을 시작합니다.

[김종환] ‘생활화학제품 안전약속 이행협의체’의 발자취와 성과

‘생활화학제품 안전약속 이행협의체’의 발자취와 성과

 

김종환

前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생활화학제품안전센터장
現 인하대학교 초빙교수

 

2019년 7월, 생활화학제품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자발적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회의장에 마주 앉은 참석자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흘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보건·환경 시민단체와 생활화학제품 제조·유통기업 대표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참사가 벌어진지 8~9 년이 되었고, 2017년에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이 제정되었지만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더디고 미흡한 피해구제로 인해 고통이 더욱 가중되는 시기였습니다. 화학제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팽배했던 분위기에서 시민환경·보건 단체 대표들이 기업들을 향해 쏟아내는 책임추궁은 매서웠고, 맞은 편 기업 대표들은 소비자, 시민들의 원망을 가시방석에 앉아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협약’은 ‘자발적 전성분 공개’와 ‘더 안전한 생활화학제품’ 등의 성과를 이루고, 2025년, ‘생활화학제품 안전약속 이행협의체’에 이르는 동안, 시민사회 단체와 화학제품 기업들이 서로에 대한 불신과 현실적 문제를 대화를 통해 극복하고 제도의 한계를 넘어 정부와 협력하는 소중한 경험을 축적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동안의 발자취에서 화학제품을 사용하는 국민의 안전이라는 공통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기업과 시민사회가 신뢰를 구축해온 흔치 않은 과정을 찬찬히 따져보고, 더 살펴야 할 점과 더욱 강조해나가야 할 일들, 그리고 새로운 단계로 나가기 위한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드러난 후,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화학물질 사고가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구심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했고, 급기야 화학제품에 대한 공포, ‘케모포비아’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2016년 여름,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포함된 에어컨 필터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이로 인한 불안이 크게 확산되자 국내에 시판된 모든 에어컨 모델의 필터를 조사하여 살생물제 성분이 방출될 수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일부 제품은 판매금지·회수조치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정부는 2016년 11월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을 확정,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018년 3월,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화학제품안전법)을 제정하고, 서둘러 2019년 생활화학제품안전센터의 문을 열었으나 화학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 법은 기업으로 하여금 화학제품에 함유된 모든 물질의 성분과 함량을 시험하고 낱낱이 신고해야 제품 출시가 가능하도록 하여 갑자기 많은 비용과 노력이 요구되는 전례 없는 고강도 규제로서 특히 중소기업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 가습기살균제에 놀란 소비자들을 안심시키려면 강화된 법 규정을 뛰어넘는, 그리고 객관적으로 신뢰할만한 이들이 참여하는 설득력 있는 행동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2019년 자발적 협약을 시작할 당시, 시민사회에 팽배한 불신을 넘어서, 기업과 정부와의 대화를 제안하고 지금까지 협약에 참여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환경정의, 환경운동연합의 용단과 노력에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이들은 내외의 비판과 어려움을 딛고 국민의 안전을 위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시민운동의 새로운 전범(典範, 본보기)을 세우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내외의 어려움 속에서도 시민사회의 비판과 제안을 적극 수용하고 제품 안전 개선과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한 참여기업과 관계자들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화학제품안전법 제2조는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 관리의 기본원칙’으로 제품안전성의 사전배려, 취약한 계층의 우선 배려, 안전에 관한 정보의 정확하고 신속한 제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행협의체는 이런 입법정신을 현장에서 구현하고 있습니다. 법이 정한 것 보다 더 안전한 화학제품을 시민과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제도와 현실의 문제를 대화로 해결해오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더 안전한 물질로의 대체와 제품 정보 공개 확대 등 지난한 논의를 거쳐 우리 현실에 적합한 틀을 만들어 낸 사업들은 더욱 확산해야 합니다. 온라인 유통 환경에서의 소비자 안전과 같은 새로운 도전에도 함께 대응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로 보면 이행협의체가 이러한 숙제들을 효과적으로 풀기에 적합하고 국민들도 신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사회적 대화를 토대로 자발적 이행 역량을 더욱 키워, 유연하고 신뢰할만한, ‘K-화학제품 안전관리 거버넌스’로 발전시켜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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