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은 어디에나 존재한다.”_시민을 만난다는 것에 대하여
권지현
민주주의기술학교 연구원
한동안 전국이 빈대 출몰로 들썩였다. ‘빈데믹’,’빈대 포비아’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시민들의 공포심은 커졌고 규조토로 빈대를 박멸했다는 영상이 400만 뷰를 기록했다. ‘드라이기로 빈대 퇴치’, ‘좀약, 베이킹소다가 효과적’, ‘가정용 살충제로 박멸 가능’, ‘날씨가 추워지면 빈대가 사라진다’ 등 빈대 박멸법이 난무했다. 빈대를 없앤다는 몇몇 제약회사의 살충제는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규폐증’을 유발하고 호흡곤란과 흉통을 일으키는 규조토 분말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또 국내에 유입된 빈대는 우리나라에서 살충제에 주로 사용하는 피레스로이드계 성분에 저항성을 갖고 있어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우니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성분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환경부가 긴급 승인한 살충제 8개 제품은 모두 전문 방역업자용이었고, 방역업체에서는 빈대 퇴치 비용이 100만원을 넘지만 완전 박멸은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국이 빈대로 들썩이지만 피해와 피해에 대한 부담과 책임은 시민의 몫이었다.
대안과 원인이 불투명할수록 가짜뉴스와 민간요법이 성행하고 시민들의 안전은 흔들린다. 빈대 살충제뿐인가, 일상 속 화학제품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는 차고 넘친다. 한때 TV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또는 식초를 섞어 쓰는 천연세제 활용법이 소개되었다. 반면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을 섞어 사용한 사람들이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위험했던 상황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전문가들은 밀폐된 화장실에서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을 섞어 장시간 사용할 경우 세정 효과는 미비하고, 오히려 호흡곤란과 두통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루에도 수만 가지씩 쏟아지는 정보에 시민들은 갈팡질팡한다. 안전하다는 화학성분이 독이 되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고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 새롭게 뒤바뀌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 SNS 댓글에는 불분명한 정보와 불안과 비난이 있을 뿐 시민들의 정제된 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속에서 우리의 ‘안전할 권리’는 뒷전이다. 누구를, 무엇을 신뢰해야 할지 시민들의 불안은 높아만 간다. 케미포비아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안전한가?
2023년 남원, 수원, 부산, 서울에서 소비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시민단체 활동가, 연구자, 시민들이 참여하는 ‘더 안전한 일상을 위한 생활화학제품 바로알기’ 대화모임을 열었다.
“시골에 살아서 그런지 마을에서 할머니들이 살충제를 몸에 진짜 많이 뿌리세요.”
“귀에 벌 들어갔을 때 막 뿌리다 응급실에 실려 가는 걸 보기도 했어요.
“이 제품이 좋은데 사용방법 읽기가 너무 힘들어요.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일상 속 화학제품 오남용 에피소드가 쏟아졌다. 사례가 모여 지식과 정보가 되는 순간이다. 시민단체 전문가가 화학제품 사용방법과 라벨읽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시민들의 대화에 길이 생기고 깊이가 더해졌다.
시민에게 대화가 필요한가?
공적인 대화 모임은 전문가, 시민단체, 시민들이 이슈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사실을 공유하고, 자신들의 견해와 비판을 제기하며 대안적 정책이나 행동 지침을 제안하는 소통의 장이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가짜뉴스로 인한 시민들의 불안을 낮추고 같은 수준의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문제해결에 함께 다가가는 첫걸음이 된다. 정보의 수평이 이루어지면 서로에 대한 생각과 견해를 나누고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균등한 정보 공유로 지식의 경계를 허물고, 신뢰와 공감대를 통해 다양성이 공존하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건전한 비판과 생각들이 공존할 때 다양한 목소리는 서로 연결되어 협력을 만들고 확산과 실행으로 참여를 만든다.
대화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연결시키는 교량의 기능을 한다. 개인이 겪고 있는 빈대와 살충제 문제가 사적 영역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웃과 사회의 문제라는 것에 공감하고 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량이며, 공감대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대화는 자아나 타인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공동체를 위한 상호이해에 도달하게 하며 사적인 삶의 의미와 공적 이슈를 연결시키고 원칙에 대한 일반적 합의를 이루게 한다. 그럼으로써 정치적 세계의 일부가 되게 한다. 수많은 삶의 공간에서 공공성의 영역을 건설하는 ‘작은 민주주의’에 희망을 건다.”
-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중에서
일상 속 화학제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작은 대화모임이 수많은 삶의 공간에서 공공성의 영역을 만드는 ‘작은 민주주의’였기에 희망을 건다.
화학물질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화학물질은 어디에나 존재한다.”_시민을 만난다는 것에 대하여
권지현
민주주의기술학교 연구원
한동안 전국이 빈대 출몰로 들썩였다. ‘빈데믹’,’빈대 포비아’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시민들의 공포심은 커졌고 규조토로 빈대를 박멸했다는 영상이 400만 뷰를 기록했다. ‘드라이기로 빈대 퇴치’, ‘좀약, 베이킹소다가 효과적’, ‘가정용 살충제로 박멸 가능’, ‘날씨가 추워지면 빈대가 사라진다’ 등 빈대 박멸법이 난무했다. 빈대를 없앤다는 몇몇 제약회사의 살충제는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규폐증’을 유발하고 호흡곤란과 흉통을 일으키는 규조토 분말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또 국내에 유입된 빈대는 우리나라에서 살충제에 주로 사용하는 피레스로이드계 성분에 저항성을 갖고 있어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우니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성분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환경부가 긴급 승인한 살충제 8개 제품은 모두 전문 방역업자용이었고, 방역업체에서는 빈대 퇴치 비용이 100만원을 넘지만 완전 박멸은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국이 빈대로 들썩이지만 피해와 피해에 대한 부담과 책임은 시민의 몫이었다.
대안과 원인이 불투명할수록 가짜뉴스와 민간요법이 성행하고 시민들의 안전은 흔들린다. 빈대 살충제뿐인가, 일상 속 화학제품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는 차고 넘친다. 한때 TV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또는 식초를 섞어 쓰는 천연세제 활용법이 소개되었다. 반면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을 섞어 사용한 사람들이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위험했던 상황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전문가들은 밀폐된 화장실에서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을 섞어 장시간 사용할 경우 세정 효과는 미비하고, 오히려 호흡곤란과 두통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루에도 수만 가지씩 쏟아지는 정보에 시민들은 갈팡질팡한다. 안전하다는 화학성분이 독이 되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고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 새롭게 뒤바뀌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 SNS 댓글에는 불분명한 정보와 불안과 비난이 있을 뿐 시민들의 정제된 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속에서 우리의 ‘안전할 권리’는 뒷전이다. 누구를, 무엇을 신뢰해야 할지 시민들의 불안은 높아만 간다. 케미포비아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안전한가?
2023년 남원, 수원, 부산, 서울에서 소비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시민단체 활동가, 연구자, 시민들이 참여하는 ‘더 안전한 일상을 위한 생활화학제품 바로알기’ 대화모임을 열었다.
“시골에 살아서 그런지 마을에서 할머니들이 살충제를 몸에 진짜 많이 뿌리세요.”
“귀에 벌 들어갔을 때 막 뿌리다 응급실에 실려 가는 걸 보기도 했어요.
“이 제품이 좋은데 사용방법 읽기가 너무 힘들어요.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일상 속 화학제품 오남용 에피소드가 쏟아졌다. 사례가 모여 지식과 정보가 되는 순간이다. 시민단체 전문가가 화학제품 사용방법과 라벨읽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시민들의 대화에 길이 생기고 깊이가 더해졌다.
시민에게 대화가 필요한가?
공적인 대화 모임은 전문가, 시민단체, 시민들이 이슈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사실을 공유하고, 자신들의 견해와 비판을 제기하며 대안적 정책이나 행동 지침을 제안하는 소통의 장이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가짜뉴스로 인한 시민들의 불안을 낮추고 같은 수준의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문제해결에 함께 다가가는 첫걸음이 된다. 정보의 수평이 이루어지면 서로에 대한 생각과 견해를 나누고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균등한 정보 공유로 지식의 경계를 허물고, 신뢰와 공감대를 통해 다양성이 공존하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건전한 비판과 생각들이 공존할 때 다양한 목소리는 서로 연결되어 협력을 만들고 확산과 실행으로 참여를 만든다.
대화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연결시키는 교량의 기능을 한다. 개인이 겪고 있는 빈대와 살충제 문제가 사적 영역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웃과 사회의 문제라는 것에 공감하고 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량이며, 공감대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일상 속 화학제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작은 대화모임이 수많은 삶의 공간에서 공공성의 영역을 만드는 ‘작은 민주주의’였기에 희망을 건다.
화학물질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