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않아도 안전과 변화를 위해 멈출 수 없는.
조준희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녹색화학팀장(책임연구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연구를 통해 사회를 더 안전하게 바꾸는 민간연구기관입니다.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 출범부터 함께 하며 생활화학제품 전성분 공개와 원료 안전성 평가·대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조준희 박사는 화학물질 위해성 평가, 독성화학물질 대체 및 저감, 생활화학제품 원료평가 분야의 전문 연구자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에서 일합니다. 제품안전협약 원료 안전성 평가 도입을 위한 책임연구자로 ‘생활화학제품 사용 원료 평가 및 대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제3기 제품안전협약 운영지원 기관 담당자로 기업, 정부, 시민사회를 만나고 있습니다.

<조준희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녹색화학팀장(책임연구원)>
더 안전한 제품을 위한 도구 ‘원료 안전성 평가’의 틀을 잡다
조준희 박사에게 제품안전협약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메사추세스 주립대학에서 작업환경을 전공했습니다. 독성물질저감연구소 TURI(Toxic Use Reduction Institute)를 방문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부소장을 만났을 때 ‘우리나라도 매사추세츠 주의 독성물질저감법(Toxic Use Reduction Act, TURA)같은 제도를 만들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연구소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원료 안전성 평가 도입을 위한 연구를 맡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면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요. 제1기 협약에서 전성분이 공개되고 조금 더 안전한 제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유해한 원료를 더 줄여 나가야 더 안전한 제품이 될 수 있고, 원료가 안전한지 유해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죠. ‘그 기준은 전문가의 눈높이가 아니라 일반 소비자와 기업이 알 수 있도록 하자’였어요. 특히 작은 기업들이 제품에 사용하는 원료가 안전한지 위험한지 이해할 수 있는 툴을 만들자는 차원에서 원료 안전성 평가가 시작되었고 제2기 협약의 중점사업이 되었던 거죠.”
생활화학제품의 원료 유해성을 평가하고 평가결과에 따라 원료를 대체하는 관리방안을 수립하는 정책은 기존의 화학제품 관리정책과 다르고 적용가능한 평가체계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해외의 화학물질 유해성 평가체계를 검토하고 장·단점을 확인하면서 원료 안전성 평가의 기본 틀을 만들었고, 2019년 10월에 생활화학제품 원료 안전성 평가‧대체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습니다.
변화, 진짜 만들어지고 있는 걸까
“화학물질을 잘 관리하고 싶지만 자원이 부족한 기업이 많습니다. 우리가 원료 평가 방법을 만들고 정보를 제공을 하는 게 제품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좀 뿌듯합니다. ‘내가 정말 저 기업, 저 분들이 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있나,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나가면 협약의 성과들이 정책의 변화를 만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2019년에 제품의 주요성분,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을 만한 원료들이나 계면활성제 같은 물질들을 공개하도록 생활화학제품법이 개정되었어요. 이건 제1기 협약에서 만든 전성분 공개 원칙과 가이드라인이 법 개정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원료 안전성 평가도 도입 4년째입니다. 소비자에게 원료에 대한 유해성 정보를 알리고 소통하려는 노력들을 계속하다보면 지금 추진하는 ‘자율안전정보제’로 곧 정책화되지 않을까요?”
‘작지만 세상의 변화에 조금은 기여하고 있구나’ 보람을 느끼다가도 절대 바뀌지 않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당장 기본적인 법규를 지키는 것도 벅찬데 한 발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뭔가 맞지 않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바이엘이 아닌 체르니를 쳐보라고 하는 것처럼.
제품안전협약 1기에 참여했던 기업들 중 2, 3기에 참여하지 않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외국계 기업들, 가습기 살균제 사고 당시 문제가 되었던 기업도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려는 기업들만 더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생활화학제품 기업 중 33개 기업이 전성분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생활화학제품 전성분은 공개 안 하는 기업이 훨씬 더 많잖아요. 기업들의 힘들다는 얘기를 들으면 열심히 하려는 기업들만 압박하는 것 같고. 내가 하는 일이 생활화학제품 시장에서 기업이나 소비자들에게 닿을만한 진짜 변화를 만들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들 때도 많죠. 협약에서 사라진 기업들은 ‘이제는 눈치를 안 봐도 되겠다’는 판단을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터지고 사회적으로 케모포비아가 생겼지만 지금은 거의 옛날 수준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코로나19를 겪고 나서 살균제에 대한 무서움이 다 사라지고 오남용이 얘기될 정도로 매일 뿌렸잖아요. 코로나가 더 무서우니까 살균제의 공포가 묻혀버리는 게 된 거죠.”
그래도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터지고 우리나라 화학물질관리 체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변화가 생기긴 생긴 건 맞아요. 법도 만들고 규정도 생겼으니까요.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약칭: 화학물질등록평가법),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 약칭: 화학제품안전법)이 새로 만들어지고, 산업안전보건법에서 MSDS(물질안전보건자료)개정 등 엄청나게 큰 법들이 5년 사이에 다 바뀌었습니다.
‘그걸로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법과 제도로 기본적인 게 채워졌다면 이걸 잘 이끌어 나가야하는데 제품안전협약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기에 멈출 수 없다.
시민사회와 기업, 정부가 힘들지만 만나서 이야기하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규제 강화나 규제 완화가 아닌 ‘규제 합리화’를 두고 좁혀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안전한 제품의 판단, 평가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성분의 유해성과 제품의 위해성을 두고 협약 안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독성의 노출이 리스크 연결된다고 보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독성이 낮은 화학물질을 사용하면 안전한 제품이라고 합니다. 기업의 입장은 사용 원료에 약간의 독성이 있지만 아주 소량이고, 매일 사용하지 않고, 바르거나 뿌리지 않고 닦아내는 제품이라면 위험보다는 안전하다는 거죠. ‘충분히 안전한 제품을 원료를 대체, 저감하자고 해서 왜 안전하지 않은 것처럼 소비자에게 오해를 주려고 하느냐’입니다.
그 말도 맞습니다. 틀린 얘기는 아니죠. 그런데 협약에서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건 ‘사전 예방적’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안전한 접근 방법을 같이 만들자는 거잖아요. 좀 더 노력하자는 거죠.”
조준희 박사는 협약에 참여하는 기업들을 위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신규 기업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관리 절차에 대한 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환경정의 이경석 사무처장과 아직까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기업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기업들에게는 화학물질을 잘 관리하는 절차를 교육하는 게 되게 중요하겠다는 얘기를 나눴어요. 화학물질을 관리할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어떤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시스템과 매뉴얼을 비슷비슷하고 작은 기업에게 공개하고 전수하면 좋겠지만 기업입장에서는 조직의 노하우다보니 쉽지 않아 작은 기업들이 꼭 해야 되는 것들만이라도 분류해서 교육하고 있어요.”
2023년 제품안전협약은 그동안 함께 만든 성과를 국민에게 알리고 앞으로 만들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향후 협약의 협의체 전환과 자율안전정보제 도입, 작은 기업들을 위한 IT 지원시스템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입니다.
“제품안전협약의 협의체 전환에 대해서는 솔직히 약간 반신반의하는 부분이 큽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엄청난 일입니다. 기업, 시민사회, 환경부가 같이 노력한 거잖아요. 협의체의 장점은 참여 기업수가 많아지면 생활화학제품 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전성분을 공개하는 기업이 33개에서 그 규모가 200개, 500개로 늘어나면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시장에 큰 변화가 생기는 거잖아요. 협약이 협의체로 형태가 바뀌더라도 지금까지 잘해왔던 일들을 이어가면서 자율적으로 갈 수 있는 구조를 ‘지금부터 생각하자’는 건 맞는데 겁이 나는 건 사실입니다.
‘필요하지만 진짜 가능할까?’라는 생각은 시민사회도, 기업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더 많은 기업이 제품안전협약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화학물질 관리를 지원하는 IT 시스템 도입은 꼭 필요하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했습니다.
“IT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꼭 필요한 일입니다. 방향성도 비전도 동의합니다.
외부 펀딩으로 재원을 마련해서 민간연구기관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을 만들어서 기부하는 형태가 되는 거죠. 협의체로 전환되었을 때 기업을 끌어들이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기업들도 화학물질을 관리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기는 거니까요. 정보 공개와 보안에 대한 문제들은 기업, 정부와 같이 천천히 풀어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요즘 조준희 박사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자율안전정보가 뭘까’입니다.
“내가 원료 평가를 하고 어떤 형태로 그 정보를 보여줄지에 너무 꽂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학물질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어도 이 성분이 안전하다 불안전하다를 알려주는 건 숫자든 동그라미든 뭐가 되어도 좋아요. 그런데 ‘정말 그걸로 된 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정말 중요한 건 소비자가 제품을 안전하게 사용하는데 필요한 정보여야 합니다. 이왕 만들 거면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생각하게 되는 거죠. 계속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하다보면 올해 안에 좋은 안이 만들어지겠죠. 내년에는 제대로 된 제도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화학물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연구자, 기업의 노력과 시민사회의 고민 역시 누구보다 잘 아는 연구자 조준희 박사가 소비자로서의 시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협약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은 소비자의 관심이었어요. 그건 가습기 문제에서 비롯된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일종의 공포심이거든요. 그런데 공포는 오래 못 가죠. 당연히. 일을 할수록 생활화학제품이 관심을 못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서워하거나 공포를 갖는 게 아니라 내가 안전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지, 적어도 내가 사용하는 제품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은 필요해요.
관심을 가진다는 건 화학물질에 대한 공부를 해서 ‘이 제품에 유해 물질이 있으니까 사용하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안전한 제품을 계속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기업과 정부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변하니까요. 시민사회를 이용을 하든, 정부에 항의를 하든. 관심과 표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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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압니다. 드러나지 않지만 민간연구기관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제품안전협약의 시작과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누군가는 해야 하는 연구라면 우리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는 말에서 연구자로서 묵묵히 일하는 조준희 박사의 마음도 알 것 같습니다.
일이 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먼저 나아가 길을 만들어 놓고, 누군가 그 길을 걸어 갈때는 반 발자국, 비스듬히 뒤에서 함께 걸으며 살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이 일을 함께 하는 연구자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요.
인터뷰와 정리 이경원
드러나지 않아도 안전과 변화를 위해 멈출 수 없는.
조준희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녹색화학팀장(책임연구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연구를 통해 사회를 더 안전하게 바꾸는 민간연구기관입니다.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 출범부터 함께 하며 생활화학제품 전성분 공개와 원료 안전성 평가·대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조준희 박사는 화학물질 위해성 평가, 독성화학물질 대체 및 저감, 생활화학제품 원료평가 분야의 전문 연구자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에서 일합니다. 제품안전협약 원료 안전성 평가 도입을 위한 책임연구자로 ‘생활화학제품 사용 원료 평가 및 대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제3기 제품안전협약 운영지원 기관 담당자로 기업, 정부, 시민사회를 만나고 있습니다.
<조준희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녹색화학팀장(책임연구원)>
조준희 박사에게 제품안전협약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메사추세스 주립대학에서 작업환경을 전공했습니다. 독성물질저감연구소 TURI(Toxic Use Reduction Institute)를 방문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부소장을 만났을 때 ‘우리나라도 매사추세츠 주의 독성물질저감법(Toxic Use Reduction Act, TURA)같은 제도를 만들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연구소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원료 안전성 평가 도입을 위한 연구를 맡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면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요. 제1기 협약에서 전성분이 공개되고 조금 더 안전한 제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유해한 원료를 더 줄여 나가야 더 안전한 제품이 될 수 있고, 원료가 안전한지 유해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죠. ‘그 기준은 전문가의 눈높이가 아니라 일반 소비자와 기업이 알 수 있도록 하자’였어요. 특히 작은 기업들이 제품에 사용하는 원료가 안전한지 위험한지 이해할 수 있는 툴을 만들자는 차원에서 원료 안전성 평가가 시작되었고 제2기 협약의 중점사업이 되었던 거죠.”
생활화학제품의 원료 유해성을 평가하고 평가결과에 따라 원료를 대체하는 관리방안을 수립하는 정책은 기존의 화학제품 관리정책과 다르고 적용가능한 평가체계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해외의 화학물질 유해성 평가체계를 검토하고 장·단점을 확인하면서 원료 안전성 평가의 기본 틀을 만들었고, 2019년 10월에 생활화학제품 원료 안전성 평가‧대체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습니다.
“화학물질을 잘 관리하고 싶지만 자원이 부족한 기업이 많습니다. 우리가 원료 평가 방법을 만들고 정보를 제공을 하는 게 제품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좀 뿌듯합니다. ‘내가 정말 저 기업, 저 분들이 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있나,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나가면 협약의 성과들이 정책의 변화를 만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2019년에 제품의 주요성분,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을 만한 원료들이나 계면활성제 같은 물질들을 공개하도록 생활화학제품법이 개정되었어요. 이건 제1기 협약에서 만든 전성분 공개 원칙과 가이드라인이 법 개정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원료 안전성 평가도 도입 4년째입니다. 소비자에게 원료에 대한 유해성 정보를 알리고 소통하려는 노력들을 계속하다보면 지금 추진하는 ‘자율안전정보제’로 곧 정책화되지 않을까요?”
‘작지만 세상의 변화에 조금은 기여하고 있구나’ 보람을 느끼다가도 절대 바뀌지 않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당장 기본적인 법규를 지키는 것도 벅찬데 한 발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뭔가 맞지 않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바이엘이 아닌 체르니를 쳐보라고 하는 것처럼.
제품안전협약 1기에 참여했던 기업들 중 2, 3기에 참여하지 않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외국계 기업들, 가습기 살균제 사고 당시 문제가 되었던 기업도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려는 기업들만 더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생활화학제품 기업 중 33개 기업이 전성분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생활화학제품 전성분은 공개 안 하는 기업이 훨씬 더 많잖아요. 기업들의 힘들다는 얘기를 들으면 열심히 하려는 기업들만 압박하는 것 같고. 내가 하는 일이 생활화학제품 시장에서 기업이나 소비자들에게 닿을만한 진짜 변화를 만들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들 때도 많죠. 협약에서 사라진 기업들은 ‘이제는 눈치를 안 봐도 되겠다’는 판단을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터지고 사회적으로 케모포비아가 생겼지만 지금은 거의 옛날 수준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코로나19를 겪고 나서 살균제에 대한 무서움이 다 사라지고 오남용이 얘기될 정도로 매일 뿌렸잖아요. 코로나가 더 무서우니까 살균제의 공포가 묻혀버리는 게 된 거죠.”
그래도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터지고 우리나라 화학물질관리 체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변화가 생기긴 생긴 건 맞아요. 법도 만들고 규정도 생겼으니까요.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약칭: 화학물질등록평가법),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 약칭: 화학제품안전법)이 새로 만들어지고, 산업안전보건법에서 MSDS(물질안전보건자료)개정 등 엄청나게 큰 법들이 5년 사이에 다 바뀌었습니다.
‘그걸로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법과 제도로 기본적인 게 채워졌다면 이걸 잘 이끌어 나가야하는데 제품안전협약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시민사회와 기업, 정부가 힘들지만 만나서 이야기하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규제 강화나 규제 완화가 아닌 ‘규제 합리화’를 두고 좁혀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안전한 제품의 판단, 평가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성분의 유해성과 제품의 위해성을 두고 협약 안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독성의 노출이 리스크 연결된다고 보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독성이 낮은 화학물질을 사용하면 안전한 제품이라고 합니다. 기업의 입장은 사용 원료에 약간의 독성이 있지만 아주 소량이고, 매일 사용하지 않고, 바르거나 뿌리지 않고 닦아내는 제품이라면 위험보다는 안전하다는 거죠. ‘충분히 안전한 제품을 원료를 대체, 저감하자고 해서 왜 안전하지 않은 것처럼 소비자에게 오해를 주려고 하느냐’입니다.
그 말도 맞습니다. 틀린 얘기는 아니죠. 그런데 협약에서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건 ‘사전 예방적’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안전한 접근 방법을 같이 만들자는 거잖아요. 좀 더 노력하자는 거죠.”
조준희 박사는 협약에 참여하는 기업들을 위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신규 기업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관리 절차에 대한 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환경정의 이경석 사무처장과 아직까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기업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기업들에게는 화학물질을 잘 관리하는 절차를 교육하는 게 되게 중요하겠다는 얘기를 나눴어요. 화학물질을 관리할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어떤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시스템과 매뉴얼을 비슷비슷하고 작은 기업에게 공개하고 전수하면 좋겠지만 기업입장에서는 조직의 노하우다보니 쉽지 않아 작은 기업들이 꼭 해야 되는 것들만이라도 분류해서 교육하고 있어요.”
2023년 제품안전협약은 그동안 함께 만든 성과를 국민에게 알리고 앞으로 만들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향후 협약의 협의체 전환과 자율안전정보제 도입, 작은 기업들을 위한 IT 지원시스템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입니다.
“제품안전협약의 협의체 전환에 대해서는 솔직히 약간 반신반의하는 부분이 큽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엄청난 일입니다. 기업, 시민사회, 환경부가 같이 노력한 거잖아요. 협의체의 장점은 참여 기업수가 많아지면 생활화학제품 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전성분을 공개하는 기업이 33개에서 그 규모가 200개, 500개로 늘어나면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시장에 큰 변화가 생기는 거잖아요. 협약이 협의체로 형태가 바뀌더라도 지금까지 잘해왔던 일들을 이어가면서 자율적으로 갈 수 있는 구조를 ‘지금부터 생각하자’는 건 맞는데 겁이 나는 건 사실입니다.
‘필요하지만 진짜 가능할까?’라는 생각은 시민사회도, 기업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더 많은 기업이 제품안전협약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화학물질 관리를 지원하는 IT 시스템 도입은 꼭 필요하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했습니다.
“IT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꼭 필요한 일입니다. 방향성도 비전도 동의합니다.
외부 펀딩으로 재원을 마련해서 민간연구기관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을 만들어서 기부하는 형태가 되는 거죠. 협의체로 전환되었을 때 기업을 끌어들이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기업들도 화학물질을 관리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기는 거니까요. 정보 공개와 보안에 대한 문제들은 기업, 정부와 같이 천천히 풀어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요즘 조준희 박사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자율안전정보가 뭘까’입니다.
“내가 원료 평가를 하고 어떤 형태로 그 정보를 보여줄지에 너무 꽂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학물질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어도 이 성분이 안전하다 불안전하다를 알려주는 건 숫자든 동그라미든 뭐가 되어도 좋아요. 그런데 ‘정말 그걸로 된 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정말 중요한 건 소비자가 제품을 안전하게 사용하는데 필요한 정보여야 합니다. 이왕 만들 거면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생각하게 되는 거죠. 계속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하다보면 올해 안에 좋은 안이 만들어지겠죠. 내년에는 제대로 된 제도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화학물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연구자, 기업의 노력과 시민사회의 고민 역시 누구보다 잘 아는 연구자 조준희 박사가 소비자로서의 시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협약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은 소비자의 관심이었어요. 그건 가습기 문제에서 비롯된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일종의 공포심이거든요. 그런데 공포는 오래 못 가죠. 당연히. 일을 할수록 생활화학제품이 관심을 못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서워하거나 공포를 갖는 게 아니라 내가 안전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지, 적어도 내가 사용하는 제품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은 필요해요.
관심을 가진다는 건 화학물질에 대한 공부를 해서 ‘이 제품에 유해 물질이 있으니까 사용하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안전한 제품을 계속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기업과 정부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변하니까요. 시민사회를 이용을 하든, 정부에 항의를 하든. 관심과 표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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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압니다. 드러나지 않지만 민간연구기관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제품안전협약의 시작과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누군가는 해야 하는 연구라면 우리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는 말에서 연구자로서 묵묵히 일하는 조준희 박사의 마음도 알 것 같습니다.
일이 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먼저 나아가 길을 만들어 놓고, 누군가 그 길을 걸어 갈때는 반 발자국, 비스듬히 뒤에서 함께 걸으며 살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이 일을 함께 하는 연구자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요.
인터뷰와 정리 이경원